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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한 사회의 모순과 비인간적인것을 주도면밀하게 꿰뚫고 투시해서 좋은쪽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사회의 불안요소나 동요가 있을때 그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지,그것을 조장하고
불안 더 확대하는 역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작가들은 좀더 정직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자기가 보수라고 하더라도 보수세력의 책동에 대해서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해야 한다.나는 스스로 진보라고 말하지만 민주화 세력의 잘못은 냉철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인이 현실정치에 대해서 발언할수 있다. 그러나 현실세계의 모순과 갈등을 감시 감독하는 관점에서 발언해야 한다.
그것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자기의 사적견해, 개인의 감정,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하면 안 된다.
자기에게 불리하더라도 대의를 위해서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작가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헌신성과 희생성
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1980년대에 내가 '태백산맥' 을 쓸 때, 주변의 후배 작가들이 당신은 왜 가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투 하는 시간에 글로써 투쟁하면서 더 많은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때 후배들은 나를 기회주의자로 몰아
세웠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그러한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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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분단된 역사 상황속에서 지난 역사의 진실을 남북한이 전부 자기들 정권 집단의 요구대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왜곡된 역사를 소설적으로 교정하고 복원하려고 애썼다. 독자들이 이 부분에 동의해주었던 것 같다. 둘째로
경제성장과 함께 계속 독자들의 지적 수준이 성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 독자들은 심각하고 무게 있는 이야기들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이런 두 가지 요소가 내 소설의 생명력을 지속시켜준 것 같다.
'한강'까지는 우리 민족의 문제를 통해서 우리 사회 성원들이 알아야 하거나 인식해야 되는 문제들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것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통해 인류사적 문제로 확대되기를 희망했다. 지난 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갔을 때, 낭독회
에서 사회자가 당신은 새 소설에서 유럽 독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나는 한국의 이야기이자 인류
전체 약속 민족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과거라고,앞으로도 그러한 역사의 반복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태백산맥'이 번역되었을 때 한 평론가가 이 작품은 한국동란에 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전인류적 강대국의 범죄에 대한 고발이라고 했다.
'한강'을 쓰고 나니까 우리 민족의 문제를 전인류사적 주제와 소제로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작가로서 바람직하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련의 멸망과 더블어 우리 분단과 연결되어 파괴되는 한 인간의 문제를 쓴 것이 '인간연습'이고, 현재
문예지에 연재하고 있는 '오 하느님'은 소위 강대국이 약소국들을 향해 어떠한 인간 범죄를 일으키고 있는가, 또 저지를
것인가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조정래
말과 사람/이명원